첫 만남의 순간
“50대 퇴직자 대상 무료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문구를 처음 봤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제가 퇴근길에 우연히 마주한 한 장의 안내문이었죠. 그날은 유난히 하늘이 어두워 보였고, 사람들 발걸음은 바쁘기만 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문구 앞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제 마음을 찌르는 것 같았거든요.
당장 내일도 출근은 해야 하지만, 몇 년 뒤면 더는 이 회사에서 자리를 지킬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갑자기 실감 났습니다. 그때부터 머릿속에는 “퇴직하면 뭐하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을 했습니다. 결과는 끝도 없었고, ‘무료’라는 말은 솔깃했지만 막상 살펴보니 조건도 다르고 과정도 달랐습니다. 머리로는 하나씩 비교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눈으로는 그저 비슷해 보일 뿐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은 그냥 검색하다가 지쳐서 노트북을 덮어버렸습니다. “뭘 알아야 고르지…”라는 한숨만 남았죠.
두 번째 시도에서의 실수
며칠 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이제는 잘하겠지”라는 자신감으로 썼는데, 결과는 또 허탈했습니다.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는데, 제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차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상 연령은 맞으시지만, 필수 서류가 누락돼 접수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귀까지 화끈거렸습니다. 회사에서 보고서 쓰면서도 실수하지 않으려 몇 번씩 검토하는데, 정작 제 인생과 관련된 서류를 이렇게 허술하게 낸 겁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괜히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벌써 이렇게 허술해진 건가’라는 자책이 몰려왔습니다.
낯선 교실에서
결국 두 번째 도전 끝에 교육 프로그램에 합격했습니다. 강의실 문을 열었을 때의 긴장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제 또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다들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주길 바랐지만, 저 역시 가만히 앉아 눈치만 살폈습니다. 괜히 앞자리에 앉았다가 강사님 질문에 당황할까 봐, 맨 뒤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첫 수업은 기본 컴퓨터 활용이었는데, 화면에 띄워진 용어조차 낯설었습니다. 강사님이 “파일을 압축해서 제출하세요”라고 하셨을 때, 저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얼어붙었고, 옆자리 사람은 이미 척척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오늘은 그냥 앉아만 있다 왔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아무것도 못 한 하루였습니다.
작은 성취의 순간
교육이 한 달쯤 지나고 나서, 모둠별 발표 과제가 있었습니다. 평소 발표를 피하려고만 했던 저는 이번에도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조원들이 제게 발표를 맡겼습니다. “형님이 정리 잘하시잖아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순간 부담이 확 몰려왔지만,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정리한 내용을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했는데, 의외로 분위기가 괜찮았습니다. 강사님이 “말씀을 참 명확하게 하시네요. 핵심을 잘 짚으셨어요”라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순간 마음속에서 뭔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도 아직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그때 처음 생겼습니다.
그 후로는 수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강의실에 오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과정에서 만난 동기들은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카페 창업을 준비했고, 다른 이는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막막하다는 생각보다는 “다들 이렇게 새 길을 찾고 있구나”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한 번은 수업이 끝난 후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퇴직하면 그냥 인생 끝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시작이 있네요.”
“맞아요. 사실 두려움만 컸는데, 이렇게 배우다 보니 조금씩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날 밤 집에 돌아가는 길,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변화가 찾아온 일상
교육 프로그램에서 배운 내용은 회사 업무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엑셀에서 늘 헤매던 함수 사용법을 배워 후배에게 알려줬더니, 후배가 놀란 눈으로 말했습니다.
“선배님, 이거 어디서 배우셨어요? 완전 전문가 같으세요.”
그 말에 기분이 묘했습니다. 퇴직을 준비하려고 배운 건데, 현재의 직장 생활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준 셈이었죠. 그날 이후 저는 더 이상 퇴직을 두려움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교육을 통해 변한 제 생활과 생각들
| 변화된 부분 | 구체적인 사례 | 느낀 점 | 지금까지 남은 영향 |
|---|---|---|---|
| 업무 활용 | 엑셀 함수와 정리법을 배워 후배에게 알려줌 | 후배가 놀라며 “전문가 같으세요”라고 말했을 때 묘한 자부심이 생김 | 회사에서도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생김 |
| 생활 태도 |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청서를 꼼꼼히 준비 | 예전 같으면 “나이 탓”이라고 넘겼을 일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됨 | 집안일이나 개인적인 계획도 더 세심하게 챙기게 됨 |
| 인간관계 | 동기들과 꾸준히 연락하며 근황을 공유 | 서로의 이야기가 큰 자극이 되어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 삶을 함께 나누는 동료가 있다는 게 든든한 버팀목이 됨 |
| 자기 인식 | 처음엔 낯선 환경에서 위축됐으나 작은 성취가 이어짐 | ‘나도 아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음 | 퇴직 후 인생을 준비할 수 있다는 용기와 긍정적인 전망이 생김 |
| 장기적 시선 | 교육 과정 덕분에 “퇴직=끝”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짐 | 앞날이 두렵기만 했던 시선이 점점 기대로 바뀜 | 인생 후반부에도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짐 |
지금의 마음가짐
돌아보면 “50대 퇴직자 대상 무료 교육 프로그램”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툴고 당황스러웠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작은 성취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동기들과는 연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됩니다. 저에게 남은 가장 큰 교훈은 단순합니다.
“멈추지 않고 걸어가면 길은 반드시 열린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든, 그때의 경험은 제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50대 퇴직자 대상 무료 교육 프로그램’은 단순한 배움이 아니라, 두 번째 청춘을 열어 준 시간입니다.